카테고리 없음

래리 페이지, 은둔형(?) 창업자

Mad Min 2016. 6. 11. 13:55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 IT 산업에서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창업자들의 이름을 하나 둘 열거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심지어 이들 중 이미 고인이 됐거나 은퇴한 인물들도 우리는 심심찮게 일상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이 포스팅에서 얘기해 보고 싶은 인물은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Larry Page) 이다. 앞에서 열거한 유명한 창업자들과 달리 래리는 공식 석상에 나서는 일이 드물고 대외 활동이 거의  없어, 그가 창조해낸 구글이라는 기업의 유명세에 비하면 존재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느낌이다.


래리 페이지를 처음으로 직접 본 것은 구글 출근 첫주 금요일에 있었던 TGIF 행사였다. 몇몇 실리콘 밸리의 회사들이 그러하듯, 매주 금요일마다 회사의 CEO 나 창업자가 앞에 나와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주에 있었던 인상적인 일들을 발표하는 가벼운 분위기의 행사이다. 맥주나 와인 같은 술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먹고 마시며 그냥 마음 편하게 창업자의 발표를 듣는다.


나의 첫주 금요일 TGIF, 두 명의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섰는데, 둘 중 한명은 바로 알 것 같았다. 세르게이 브린. 음… 그런데 래리 페이지는 어디 있는 것일까? 그리고 세르게이 옆의 새치가 머리에 가득한 저 남자는 누구? 이것이 내 첫 반응이었다. 마침 바로 옆에 앉아있던 나의 멘토에게 물었다. "세르게이 옆의 저 남자는 누구죠?" 나는 아직도 멘토의 황당한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다… 세르게이 옆의 새치머리 남자가 바로 래리였다. 이는 역시 래리가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세르게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어도 래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두 공동 창업자의 이름이 Larry & Sergey 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럼, 왜 래리는 다른 위대한 창업자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가 별로 사교적이지 않고 대외 활동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교적이지 않고" 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인가 하는 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실제 이런 저런 근거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래리와 구글의 초창기 성공이 많은 부분 굉장한 행운에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스탠포드 박사 과정학생 래리는 자신이 개발한 웹페이지 랭킹 알고리즘을 갖고 그저 뭔가 사업을 해 보고 싶은 생각으로 회사를 많들었는데 초창기 좋은 인물들이 운좋게 잘 모이고, 좋은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엄청 똑똑한 사람들이 더 모여들어 수익모델보다 기술에 더 집중 투자했는데 대박이 났다. 또한 에릭 슈미트라는 걸출한 CEO 가 회사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어 주지 않았나. 참 운이 좋았다."


그렇다. 구글에는 래리만큼 아니 래리보다 더 똑똑한 엔지니어가 넘쳐날 것이고, 3년차부터 에릭 슈미트가 회사의 급속한 성장을 이끌어 줬다. 이 비사교적인 은둔형 창업자는 스티브 잡스 같이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이미지는 "스탠포드 박사 과정생 → 구글의 창업자. 대박!" 이 정도 수준이다. 중간의 화살표에 뭔가가 빠진것 같지 않은가? 그가 단순히 페이지 랭킹 알고리즘을 개발할 정도로 똑똑하고 운이 좋아서 구글이라는 "대박" 기업이 생겨났을까?


답은 "아니다" 이다. 어떤 집단/단체이든, 그 집단을 처음에 만들어낸 창업/창단 멤버의 속성을 그대로 이어 받는다. 그리고, 창업의 결과물인 기업이라는 것은 창업자 그 자신이라 봐도 무방하다. 멀리 보지 않고, 가까이 봐도 우리는 삼성, 현대와 같은 대기업들이 어떻게 창업자인 이병철, 정주영 회장의 --장점일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는-- 여러 개인적인 속성들을 그대로 빼닮았는지 감탄하게 된다. 이 래리 페이지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가져 본 구글 직원이라면 "그가 곧 구글" 이라는 주장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첫째, 래리 페이지는 컴퓨팅의 효율성과 스케일에 대한 집착이 엄청났다. 그가 처음 구글을 만들 때 모토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사용자들이 손쉽게 접근하도록 하겠다." 는 것이다. (물론 현재도 유효한 구글의 주요 비전이다.) "모든 정보", 정말 엄청난 스케일이지 않은가? 흔히 우리는 구글의 핵심 역량이 "검색" 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구글의 핵심 역량은 전지구적 규모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재빨리 개발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거대한 컴퓨팅 인프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래리 페이지가 처음부터 병적으로 집착하고 원했던 비전이었던 것이다. 


그의 컴퓨팅 효율성에 대한 병적인 집착에 관련한 일화도 여러가지가 있다. 재밌는 것은 GMail 개발에 관련된 것인데, 그의 시간 민감도는 일반적인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는다. GMail 개발 초창기 담당 엔지니어가 래리에게 가서 데모를 하고 보고를 하는데, 래리가 GMail 의 페이지 로딩 속도를 눈대중으로만 보고, "뭐야? 너무 느린데? 600 밀리 초도 넘게 걸리는걸?" 6초도 아니고 0.6 초라는 구체적인 시간 단위까지 들이대며 느리댄다. 이에 살짝 빈정 상한 담당 엔지니어,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그 데모의 로그 데이타를 실제로 뒤져보고는 경악했다. 거기에는 실제로 630 밀리 세컨드라고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구전으로 떠도는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그 엔지니어가 퇴사 후에 팟캐스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내용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구글의 검색 결과에 그 결과가 몇초 만에 생성됐는지 표시되는 것도 래리의 스피드에 대한 집착에 기인한다.


둘째, 다른 위대한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누굴 채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굉장히 민감했다. 그리고 이들이 한데 어울려 즐겁게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문화에 집착했다. 구글의 채용 과정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졌으니 따로 말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구글 초창기에 그가 회사 내부에 전체 메일로 보낸 메시지를 살펴보면 그가 이 부분에 있어 굉장히 집착하고 있는 몇가지들을 짚어 볼 수 있다. (링크)


그리고, 회사 규모가 꽤 커진 시점에도 모든 회사 지원자들의 합격 여부의 최종 인가는 그가 일일이 다 살펴보고 싸인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입사한 시점에도 그가 싸인한 오퍼 레터를 받았던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창업자가 일일이 신입사원의 합격 여부를 챙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얼마나 같이 일할 인재에 집착했느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래리 그는 스탠포드에서 갓 튀어나온 공돌이 샌님이었을까? 물론, 여기에 대한 대답도 "No" 이다. 그는 이미 구글을 창업하기 전부터, 자신이 창업하게 될 회사의 경영권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형도 사업가였는데, 형이 벤처 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고 회사의 경영권을 투자자들에게 잃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았다. 그리고, 구글 창업 이후 이 경영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엄청난 집착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외부 투자자들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초창기 빛나던 비전을 잃고 망가져 가는 기업들을 실리콘 밸리에서 숱하게 봐 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 주식의 숫자로만 따지면 래리의 그것은 40%에 미치지 못하지만, 의결권만 따지만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와 합칠 경우 40%에 이르게 된다. 이는 투자를 받고 신규 주식을 발행하면서 의결권이 없는 주식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돈을 댄 투자자들에게 내주는 것이 너무 두려웠던 것이다. 실제,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수익성에 집중하면서 장기적으로 회사를 망가뜨려 놓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가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이후에도 CEO 로 경영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슈이지만, 어쨋든 에릭 슈미트로부터 CEO 자리를 넘겨 받은 이후에도 "그가 곧 구글" 임을 증명한 것 같다.)


이 정도면, 래리가 단순히 "운이 좋아 구글을 만들어 냈다" (아니면 단순히 "구글을 키워낸 것은 에릭 슈미트다")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창업자들의 성공을 가리켜 "대박", "벼락부자", "신데렐라" 이런 싸구려 표현을 갖다 대지 말자. 이것은 그들에 대한 아주 고약한 모독일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길고 고된 여정에 어떤 드라마가 숨어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