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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더쉽" 이라는 단어는 우리 인간들이 흔히 쓰는 "사랑" 만큼이나 너무 자주 사용돼 닳고 닳아버린 단어 중 하나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것의 중요성은 여전히 그 어휘 사용의 진부함만큼이나 크지만. 이렇다보니 내게도 이것과 관련된 인상적인 이야기는 몇가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초등학교 -- 당시는 "국민" 학교 -- 4학년 1학기가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 (학기 첫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임시 반장이었던 나는 같은 남학생들을 모두 인솔해서 우리반이 맡은 학교의 한구역 청소를 끝내야 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교실은 물론이고 학교의 모든 부분을 학생별로 또는 반별로 나눠서 청소해야 했다. 청소가 깨끗하게 끝났음을 확인 받지 않고는 하교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엄포가 있었고, 우리가 맡은 구역이었던 학교 건물 근처에서 흩어져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이 "청소"였지. 그렇게 화단 구역에 풀어다 놓은 한무리의 애들은 그냥 놀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개인적인 청소 할당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구역의 청소가 다 끝남" 이라는 지극히 간단하고 추상적인 평가기준으로 이 열한두살짜리 소년들을 움직일 동기부여를 할수는 없는 것이었다. 물론, 청소가 끝나야 집에 갈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렸지만, 우리는 당시 열살 남짓이었다. 책임과 결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 책임이라는 견고한 방패 뒤에 숨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별 재밌는 놀거리도 없는 그 청소 구역에서 시간을 더 이상 빼고 싶지 않았다. 끝내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게다가 어쨋든 내가 책임지고 끝내야 하는 입장이 아닌가. 시간이 지나자 초조한 마음에 애들을 닥달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몇몇에게는 심각하게 화를 내기도 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수업이 끝나고도 청소나 하며 집에 늦게 가고 싶은 사람은 분명히 한놈도 거기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청소하려 하지 않았다. 누가 많이 하든 우리는 다같이 사이좋게(?) 같은 시간에 집에 돌아가게 될거니까.
어쨋든, 나의 압박이 좀 심했나 보다. 몇몇 친구가 나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나는 벌써 이만큼이나 했네.", "누구누구는 놀고 있네", "우리한테 말하는 시간에 가서 너나 많이 해라.", 심지어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 그리고 최종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재수없는 임시반장 놈." 그렇게 질질 끌던 청소는 예상보다 한참 후에 끝났고, 그중 친한 친구 두어명을 포함한 몇몇이 모여 뭔가를 모여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한녀석이 나에게 오더니 굉장한 소식을 전했다. 며칠 뒤에 있을 반장 선거 전에 적극적으로 선전해서 내가 절대 반장이 되지 못하게 하겠단다. 그때 어린 우리들이야 이 단어에 대해 몰랐겠지만, 간단히 말해 낙선운동이다.
그런 조직력과 정성으로 청소나 합심해서 했으면 좋았을 것을 어쨋든 애들은 단하나의 목적으로 똘똘 뭉쳐 며칠동안 열심히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그 학교의 학급회 구조를 말하자면 매학기마다 5명의 반장을 새로 선출해서 일주일마다 돌아가며 책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극히 일반적인 반장투표를 통해 상위 5명의 득표자를 반장으로 뽑았다. 사실 그것이 대단한 감투인것도 아니고 권력인 것도 아니고, 그냥 소정의 책임을 다하는 자리일 뿐이지. 성적에 부가점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매학기마다 치르는 약간 흥미있는 학급 이벤트일 뿐이었다. 손바닥만한 시골 초등학교의 한 학급에서 누가 그래도 좀 난 놈이냐를 가리는 정도? 우리도 이렇게 쿨하게 생각했냐고? 물론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열살 남짓의 '초딩'들일 뿐이었다. 사소한 일에 목숨걸고 열심히 싸우기도 한다. 1학년때부터 시작해 매학기 최다득표로 매번 반장을 했던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듯 심심하게 지나가던 이벤트에 정말로 엄청난 이벤트가 생겼다. 나를 겨냥한 모든 남학생들의 낙선 운동.
이 와중에 덤으로 재밌는 "이벤트"가 하나 더 생겼다. 1학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반장을 못해서 이번에는 한번 꼭 해보고 싶다며, 커다란 사탕 봉지를 하나 학교에 들고와서 애들에게 나눠주며 반장으로 뽑아 달라고 읍소하는 녀석도 있었다. 이쯤 되고 보니, 이제 어른들의 그 이벤트 못지않다. "낙선운동", "금권선거". 애들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사탕에 열렬히 호응하는 "유권자"들이 상당히 존재했다.
역시나, 그 학기의 반장 선거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빅 이벤트" 가 되고 말았다. 실제로도 초등학교 졸업때까지 있었던 매번의 반장 선거 중에 기억나는 건 이것, 딱 그때의 선거뿐이다. 이쯤되면 이미 그냥 다 끝난 것 아니냐고? 아직 내가 지금까지 얘기하지 않은 큰 변수가 남아있다. 한 학급의 50%는 여학생이다. 이 정도 어린 나이에 다 그렇듯이, 이성에 별 관심이 없으며 남자, 여자 그다지 같이 섞여 놀지 않았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같은 반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항상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모여 놀았다. 이러다 보니 남학생들의 낙선운동은 남학생에게만 국한됐다. 당시에도 나는 이런 상황을 나름 분석하며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이정도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마음 고생을 좀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마침내, 반장 선거 시간. 먼저 후보 추천이 시작되고 거의 매번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친구들의 이름이 칠판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남학생들은 아무도 나를 추천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에 여학생 중 하나가 이 이벤트에 항상 등장하던 누군가가 빠졌다고 생각했나 보다. 내 이름이 올랐다. 그리고 투표후 개표. 매번 따분할 정도의 개표 상황은 이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쨋든 반장이 되려면 상위 5위의 득표가 필요하다. 역시 남학생은 아무도 나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나 보다. 득표가 상당히 저조했다. 개표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나는 그 사탕을 뿌려대던 친구와 5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돈을 좀 쓴 그친구가 너무나 그 순간 얄미웠다. 결과는, 정말 단 한표차이로 5위와 6위가 갈렸다. 아, 손에 땀을 쥐는 개표가 이런 것이었나… 나는 내 인생에서 그 뒤로 단 한번도 드라마틱하다고 느껴지는 개표 방송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 그 사탕 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
결과는… 나는 이번에도 반장이었다. 내가 매번 달성해 온 것을 이번에도 이뤘다는 안도감 외에, 그 낙선운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나를 제외한 전체 남학생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는 것이 참 기분 좋았다.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 지나서 보니, 좋은 리더쉽인가 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가 참 미련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리고,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청소 대표 임무를 맡더라도 단 한번도 애들에게 청소 열심히 하고 빨리 끝내자고 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좋은 대로 하게 내버려뒀을 뿐. 혼자 그냥 자리에 앉아 풀뽑고 휴지를 주웠다. 그리고, 한번 일이 터졌다. 2층인가 3층의 교실에서 청소 구역을 내려다 보던 담임 선생님이 화가 나서 달려 온 것이다. 순간 큰일났다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선생님은 반장만 청소하고 있고 왜 아무도 청소를 하지 않냐며 나를 제외한 애들을 야단치시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귀가조치를 내리시고 나머지 학생들을 벌을 세우시는 것이었다. 혼자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면서 뒤에 남겨진 친구들에게 웬지 미안하기도 하고... 사실 그놈들 참 쌤통이네 라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때 경험 이후로 거의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나에 있어 리더쉽이라는 것은 참 회의적인 것이었다. 모든 이들이 이 사회에 정의를 원하지만, 개인적으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그것을 지지하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 빨리 집에 가고 싶지만 열심히 앞장서서 청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진정 리더쉽이라는 것은 단체 구성원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인간의 욕망을 뛰어 넘어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탕 발림을 하든, 뭔가를 이루는데 있어 희생이라는 댓가가 따르는 법이고 구성원 모두가 아니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큰 불이익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 어느 누가 사람 숫자만큼 다양한 집단의 욕망을 정확히 충족시킬 수 있을까. 하지만 그들을 달래야 하는 법이다.
매번 이런 상황이 생길때마다 초등학교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좀 더 잘 해 보려고 하지만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참 미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