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마켓이나 기타 상점에서 계산대에서 물건값을 치르고 나가는 시간은 보통 굉장히 짧은 편이기에, 캐셔와 손님간의 대화는 별로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모든 일의 처리가 느린 편인 미국에서는 물건값의 지불외 다른 일상적인 대화가 오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 편이다. 이런 일상의 피상적인 부분에서 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날씨 얘기, 손님이 몸에 걸친 악세사리에 대한 얘기, 구입한 물건에 대한 얘기 등등.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그리고 안전한!) 주제의 얘기가 오가게 되는데, 보통 가벼운 주제의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 인종, 문화 등 여러 사회 요소가 다양한 미국 사회에서는 말이나 행동에 있어 여러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 ..
유학생으로 미국 생활을 하면서 처음 정착한 곳은 미국 펜실바니아 주의 피츠버그. ("Pittsburgh". 그렇다. 스펠링이 참 애매하다. 그곳 주민들도 제대로 못쓰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한국에서는 그곳의 야구팀이나 풋볼팀을 매개로 좀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사실 그 한국인, 한국혼혈 스포츠 스타들을 제외하면 한국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도시다. 100년쯤 전에는 세계 최고의 철강 도시였으나 (지금의 실리콘밸리 같은 이미지였을까), 이후 미국 철강 산업이 쇠락하면서 젊은이와 노동자는 다 떠나버린 미국 중동부의 그저 그런 촌동네 소도시일 뿐이다. 실제로 피츠버그 여기 저기를 거닐다 보면 정말 다양한 양식의 교회, 성당 건물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의 믿는 종파가 ..
외국 생활에서의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언어 문제이다. 미국 생활이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이야 생활 여러방면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의사 소통에 무리가 없으니 무감각하긴 한데, 10년전 첫발을 내딛을 때는 정말… 언어의 장벽은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많은 좌절과 심지어 공포까지 안겨주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해서 유학준비 시점까지 10년이 넘게 공부했지만 (물론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강요받지는 않았다.) 현지에 와서 그다지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만국공통어'를 번듯하게 구사할 수 없다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일상 생활에 큰 불편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미국에 온 이후 제일 먼저 시도했던 식당은 Subway. 학교에 아주 가까이 있기도 했고, 한국에서 종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