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번 얘기했듯이 한국어와 영어는 음성언어 전달에 있어서 강조해야 하는 포인트가 전혀 (x100!!!) 다르다. 한음절 음절 정확한 발음을 중요시하는 한국어와 달리, 영어는 각 음절의 정확한 발음보다 단어의 강세와 문장의 소리 높낮이가 훨씬 중요하다. 예를 들어 "analysis" 는 한국어처럼 "어.낼.리.시.스" 로 발음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제대로 발음해서, 강조점을 표시해서 쓰자면 적당한 발음은 "어낼러시스" 정도? 맨앞의 "a" 는 슈와 (schwa) 라고 하며 거의 발음이 되지 않는 요소이다. 영어에서는 강세와 억양 외에 한가지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단어에서 음절의 장단이다. 한국어 단어에도 물론 장단의 구분이 있는 것이 더러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어시험 단골 메뉴..
미국에 살면서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들 중 하나. 여기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과를 하는 타이밍이다. 더 정확히는, 타이밍이라기 보다는 사과해야 할 이슈가 얼마나 중대한 것이냐가 되겠다. 웃긴 것이 그다지 사과할 필요가 없는 일에는 "I'm sorry." 를 남발하면서 정작 사안이 중대하면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는 정말 듣기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길이나 통로에서 서로 마주보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서로 길을 막게 되면, 멈칫 하면서 십중 팔구 "I'm sorry." 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그리곤, 왼쪽이나 오른쪽을 살짝 비켜 가던 길을 계속 가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경우가 생기면 누가 "죄송합니다" 라고 얘기 하는가? 사실, 이런 사소한 일에 미안함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고, 사과를..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 IT 산업에서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창업자들의 이름을 하나 둘 열거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심지어 이들 중 이미 고인이 됐거나 은퇴한 인물들도 우리는 심심찮게 일상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이 포스팅에서 얘기해 보고 싶은 인물은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Larry Page) 이다. 앞에서 열거한 유명한 창업자들과 달리 래리는 공식 석상에 나서는 일이 드물고 대외 활동이 거의 없어, 그가 창조해낸 구글이라는 기업의 유명세에 비하면 존재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느낌이다. 래리 페이지를 처음으로 직접 본 것은 구글 출근 첫주 금요일에 있었던 TGIF 행사였다. 몇몇 실리콘 밸리의 회사들이 그러하듯, 매주 금요일마다 회사의 CEO 나 창업자가 앞..
순수과학 분야의 연구자든, 산업계의 엔지니어든 간에 어떤 한 분야의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전문가들이면 다들 한번씩 던저 보는 질문일 것이다: X 라는 문제/사물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무엇일까? 아니면,그 문제의 --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 최적의 솔루션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나는 박사 과정의 대부분의 시간을 악성코드 (쉽게 말해 컴퓨터 바이러스) 의 분석과 관련된 연구로 보냈다. 그러다 보니 랩 친구들과 가끔씩 궁극의,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최악의, 악성코드는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가끔씩 하곤 했다. 실제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론적으로만 생각해 보는 것이니 말은 쉽다. 어쨋든, 이상적인 악성코드의 핵심 요구사항은 몇가지가 있다. 감시 시스템에..
몇주 전에 대학원 친구인 Juan (후앙) 에게서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약혼녀가 딸을 임신했고 올 여름에 출산 예정이라는 것. 그 기쁜 소식에 대해 얘기하다 결혼식은 언제냐고 물어보는 것을 깜박했다. 몇년전부터 결혼 할 것 같다라는 얘기만 전해 오던 터인데 더 늦기 전에 애부터 먼저 가지기로 결정했나 보다. 다른 유럽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형식적인 절차는 크게 괘념치 않는 듯 했다. 동갑내기 스페인 출신 친구인 후앙은 나보다 1년 먼저 박사과정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같은 연구실 소속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지도교수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가게 되면서 소속을 나와 같은 지도교수로 바꾼 것이었다. 그 이전에도 같은 건물에 있는 학생이다보니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고 있는 정도였다. 이후 1년차..
이전에도 피츠버그의 겨울 얘기를 한번 했던 것 같은데, 캘리포니아로 이사온 이후로는 겨울다운 겨울을 거의 겪지 못했다. 우습게도 가끔씩 캘리에 여름 폭염이 덮칠 때면 얼음을 갈아먹으면서 그때의 겨울을 떠올리곤 한다. 빙삭기로 갈아서 그릇에 소복히 쌓아놓은 얼음가루 모양이 피츠버그에서 겨울이면 내 차 지붕 위에 쌓여 있던 눈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피츠버그에서 학교를 다닐 때 집이 학교에서 가까운 편이라 평일에는 차를 거의 쓰는 일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일에 눈이 좀 많이 내리면 주말까지 차는 계속 눈에 파뭍혀 있게 된다. 이러면 몇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주로 문제는 낮동안 햇볕이 나오고 온도가 약간 오르면서 차에 쌓여있던 눈이 녹았다 해가 떨어지면 다시 얼면서 생긴다. 차 앞쪽 유리에 얼..
이 "리더쉽" 이라는 단어는 우리 인간들이 흔히 쓰는 "사랑" 만큼이나 너무 자주 사용돼 닳고 닳아버린 단어 중 하나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것의 중요성은 여전히 그 어휘 사용의 진부함만큼이나 크지만. 이렇다보니 내게도 이것과 관련된 인상적인 이야기는 몇가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초등학교 -- 당시는 "국민" 학교 -- 4학년 1학기가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 (학기 첫날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임시 반장이었던 나는 같은 남학생들을 모두 인솔해서 우리반이 맡은 학교의 한구역 청소를 끝내야 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교실은 물론이고 학교의 모든 부분을 학생별로 또는 반별로 나눠서 청소해야 했다. 청소가 깨끗하게 끝났음을 확인 받..
미국에 살면서 FBI 요원들이 직접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일은 그다지 흔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두번이나 그들의 방문을 받았다. 첫번째는 피츠버그에서,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없는 일로, 두번째는 버클리에서 보안과 관계된 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같이 살짝 열린 현관문 틈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고 코앞에 FBI 뱃지를 갖다대는 요원들을 보게 됐다. 첫번째 케이스는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 같은 층의 누군가가 FBI 에 취직하게 됐는데, 그 사람의 뒷조사 (background check) 를 하러 온 FBI 요원이었다. 미국에서는 어디나 번듯한 직장이라면 가벼운 또는 거의 명목상의 뒷조사를 하는데, 복잡한 보안등급 체계를 유지하는 FBI 라면 뒷조사를 위해 이웃집..
캘리포니아로 옮겨 온 대학원 4년차 시절, 랩 동기, 친구들과 함께 버클리 소다홀에 오피스를 배정받았다. 피츠버그에서 버클리로 옮기면서 훨씬 나아진 점은 음식이 더 다양하고 맛있다는 점이었다. (그곳 인구 구성의 다양성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 듯.) 점심 시간이 되면 소다홀 근처의 작은 푸드 코트에서 배를 채우곤 했는데, 주로 Juan 과 같이 다니다 보니 이 녀석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점을 주로 가게 됐다. 사실, 전통 한국음식이라 보긴 힘든 BBQ 치킨, 치킨 비빔밥, 야채 비빔밥 등이 주 메뉴였는데,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에 엄청난 양, 싼 가격 덕에 많은 학생들이 찾는 편이었다. 당시 1년간 채식을 했던 나에게 그곳의 야채 비빔밥은 준수한 점심거리였다. 그 푸드코트 한국식당이 기억나는 것..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알려하지 마라." 예전에 피파의 월드컵 운영비리가 크게 이슈가 됐던 때, 누군가 "소세지 원칙" (Sausage Principle) 이란 것을 들먹이며 성토했던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세지를 맛있게 먹지만, 소세지가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란 것. 실제로 얼마 전에 미국에서 시중의 소세지들을 수거해서 어떤 동물의 DNA 가 포함돼 있는지 검사했더니, 돼지뿐 아니라 말 등과 같이 다른 동물과 미량이긴 하지만 심지어 사람(!)의 DNA까지 함께 검출 됐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특정 상표의 맛있는 소세지는 인육을 갈아 넣었다 등의 터무니 없는 도시괴담이 돌곤 하는데 -- "OO반점 인육만두"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