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한번 얘기했듯이 한국어와 영어는 음성언어 전달에 있어서 강조해야 하는 포인트가 전혀 (x100!!!) 다르다. 한음절 음절 정확한 발음을 중요시하는 한국어와 달리, 영어는 각 음절의 정확한 발음보다 단어의 강세와 문장의 소리 높낮이가 훨씬 중요하다. 예를 들어 "analysis" 는 한국어처럼 "어.낼.리.시.스" 로 발음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제대로 발음해서, 강조점을 표시해서 쓰자면 적당한 발음은 "어낼러시스" 정도? 맨앞의 "a" 는 슈와 (schwa) 라고 하며 거의 발음이 되지 않는 요소이다. 영어에서는 강세와 억양 외에 한가지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단어에서 음절의 장단이다. 한국어 단어에도 물론 장단의 구분이 있는 것이 더러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어시험 단골 메뉴..
미국에 살면서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들 중 하나. 여기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과를 하는 타이밍이다. 더 정확히는, 타이밍이라기 보다는 사과해야 할 이슈가 얼마나 중대한 것이냐가 되겠다. 웃긴 것이 그다지 사과할 필요가 없는 일에는 "I'm sorry." 를 남발하면서 정작 사안이 중대하면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는 정말 듣기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길이나 통로에서 서로 마주보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서로 길을 막게 되면, 멈칫 하면서 십중 팔구 "I'm sorry." 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그리곤, 왼쪽이나 오른쪽을 살짝 비켜 가던 길을 계속 가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경우가 생기면 누가 "죄송합니다" 라고 얘기 하는가? 사실, 이런 사소한 일에 미안함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고, 사과를..
몇주 전에 대학원 친구인 Juan (후앙) 에게서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약혼녀가 딸을 임신했고 올 여름에 출산 예정이라는 것. 그 기쁜 소식에 대해 얘기하다 결혼식은 언제냐고 물어보는 것을 깜박했다. 몇년전부터 결혼 할 것 같다라는 얘기만 전해 오던 터인데 더 늦기 전에 애부터 먼저 가지기로 결정했나 보다. 다른 유럽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형식적인 절차는 크게 괘념치 않는 듯 했다. 동갑내기 스페인 출신 친구인 후앙은 나보다 1년 먼저 박사과정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같은 연구실 소속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지도교수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가게 되면서 소속을 나와 같은 지도교수로 바꾼 것이었다. 그 이전에도 같은 건물에 있는 학생이다보니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고 있는 정도였다. 이후 1년차..
이전에도 피츠버그의 겨울 얘기를 한번 했던 것 같은데, 캘리포니아로 이사온 이후로는 겨울다운 겨울을 거의 겪지 못했다. 우습게도 가끔씩 캘리에 여름 폭염이 덮칠 때면 얼음을 갈아먹으면서 그때의 겨울을 떠올리곤 한다. 빙삭기로 갈아서 그릇에 소복히 쌓아놓은 얼음가루 모양이 피츠버그에서 겨울이면 내 차 지붕 위에 쌓여 있던 눈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피츠버그에서 학교를 다닐 때 집이 학교에서 가까운 편이라 평일에는 차를 거의 쓰는 일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일에 눈이 좀 많이 내리면 주말까지 차는 계속 눈에 파뭍혀 있게 된다. 이러면 몇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주로 문제는 낮동안 햇볕이 나오고 온도가 약간 오르면서 차에 쌓여있던 눈이 녹았다 해가 떨어지면 다시 얼면서 생긴다. 차 앞쪽 유리에 얼..
미국에 살면서 FBI 요원들이 직접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일은 그다지 흔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두번이나 그들의 방문을 받았다. 첫번째는 피츠버그에서,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없는 일로, 두번째는 버클리에서 보안과 관계된 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같이 살짝 열린 현관문 틈으로 얼굴을 불쑥 들이밀고 코앞에 FBI 뱃지를 갖다대는 요원들을 보게 됐다. 첫번째 케이스는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 같은 층의 누군가가 FBI 에 취직하게 됐는데, 그 사람의 뒷조사 (background check) 를 하러 온 FBI 요원이었다. 미국에서는 어디나 번듯한 직장이라면 가벼운 또는 거의 명목상의 뒷조사를 하는데, 복잡한 보안등급 체계를 유지하는 FBI 라면 뒷조사를 위해 이웃집..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알려하지 마라." 예전에 피파의 월드컵 운영비리가 크게 이슈가 됐던 때, 누군가 "소세지 원칙" (Sausage Principle) 이란 것을 들먹이며 성토했던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세지를 맛있게 먹지만, 소세지가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란 것. 실제로 얼마 전에 미국에서 시중의 소세지들을 수거해서 어떤 동물의 DNA 가 포함돼 있는지 검사했더니, 돼지뿐 아니라 말 등과 같이 다른 동물과 미량이긴 하지만 심지어 사람(!)의 DNA까지 함께 검출 됐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특정 상표의 맛있는 소세지는 인육을 갈아 넣었다 등의 터무니 없는 도시괴담이 돌곤 하는데 -- "OO반점 인육만두" 처..
수퍼마켓이나 기타 상점에서 계산대에서 물건값을 치르고 나가는 시간은 보통 굉장히 짧은 편이기에, 캐셔와 손님간의 대화는 별로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모든 일의 처리가 느린 편인 미국에서는 물건값의 지불외 다른 일상적인 대화가 오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 편이다. 이런 일상의 피상적인 부분에서 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날씨 얘기, 손님이 몸에 걸친 악세사리에 대한 얘기, 구입한 물건에 대한 얘기 등등.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그리고 안전한!) 주제의 얘기가 오가게 되는데, 보통 가벼운 주제의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 인종, 문화 등 여러 사회 요소가 다양한 미국 사회에서는 말이나 행동에 있어 여러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 ..
"Party Animal", 대학원 시절 룸메이트 Juan이 나를 이렇게 부르곤했다. 어떤 파티든지 안가리고 따라 나선다고 붙인 별명이었다. 성격으로 볼 때 나는 절대로 아주 외향적이거나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는 피상적일 수 밖에 없고, 나는 이런 다자간 피상적인 대화에 시간을 쏟는 것이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별명을 얻게 된데는 그다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유학생들이 모두 다짐하듯이, 빠른 시간 안에 문화적으로도 현지에서 적응하고자 하는 것. 그래서 금요일, 주말 저녁에 생기는 이런 이벤트들은 나름 그 목적을 달성해 보기 위한 괜찮은 기회였다. 음, 역시나 그다지 쉽지 않았지만. 스페인 출신인 Juan은 다른 스페인 사람들이나 이탈리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유학생으로 미국 생활을 하면서 처음 정착한 곳은 미국 펜실바니아 주의 피츠버그. ("Pittsburgh". 그렇다. 스펠링이 참 애매하다. 그곳 주민들도 제대로 못쓰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한국에서는 그곳의 야구팀이나 풋볼팀을 매개로 좀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사실 그 한국인, 한국혼혈 스포츠 스타들을 제외하면 한국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도시다. 100년쯤 전에는 세계 최고의 철강 도시였으나 (지금의 실리콘밸리 같은 이미지였을까), 이후 미국 철강 산업이 쇠락하면서 젊은이와 노동자는 다 떠나버린 미국 중동부의 그저 그런 촌동네 소도시일 뿐이다. 실제로 피츠버그 여기 저기를 거닐다 보면 정말 다양한 양식의 교회, 성당 건물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의 믿는 종파가 ..
외국 생활에서의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언어 문제이다. 미국 생활이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이야 생활 여러방면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의사 소통에 무리가 없으니 무감각하긴 한데, 10년전 첫발을 내딛을 때는 정말… 언어의 장벽은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많은 좌절과 심지어 공포까지 안겨주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시작해서 유학준비 시점까지 10년이 넘게 공부했지만 (물론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강요받지는 않았다.) 현지에 와서 그다지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만국공통어'를 번듯하게 구사할 수 없다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일상 생활에 큰 불편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미국에 온 이후 제일 먼저 시도했던 식당은 Subway. 학교에 아주 가까이 있기도 했고, 한국에서 종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