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몇주 전에 대학원 친구인 Juan (후앙) 에게서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약혼녀가 딸을 임신했고 올 여름에 출산 예정이라는 것. 그 기쁜 소식에 대해 얘기하다 결혼식은 언제냐고 물어보는 것을 깜박했다. 몇년전부터 결혼 할 것 같다라는 얘기만 전해 오던 터인데 더 늦기 전에 애부터 먼저 가지기로 결정했나 보다. 다른 유럽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형식적인 절차는 크게 괘념치 않는 듯 했다.
동갑내기 스페인 출신 친구인 후앙은 나보다 1년 먼저 박사과정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같은 연구실 소속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지도교수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가게 되면서 소속을 나와 같은 지도교수로 바꾼 것이었다. 그 이전에도 같은 건물에 있는 학생이다보니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고 있는 정도였다. 이후 1년차가 끝나고 논문도 같이 쓰고 뉴저지의 at&t 연구소에서 섬머인턴을 같이 하면서 많이 친해진것 같다.
섬머인턴 장소와 시기가 둘다 같은 터라, 여름 동안 같이 집을 빌려서 사용했는데, 뉴저지로 떠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할 많은 것들에 이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지도교수님이 미국생활 1년 밖에 안된 외국인 학생을 혼자 멀리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나마 영어권 생활 경험이 많은 후앙에게 나를 좀 챙겨주라고 신신당부를 한 터였다. 그렇게 여름동안 한집에서 같이 출퇴근하고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비로소 서로 친구라고 부르게 됐다.
그렇게 여름동안 지내면서 발견한 재밌는 사실은, 스페인과 프랑스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해 여름은 독일 월드컵이 있었고, 한국은 조별 예선 한경기를 프랑스와 치르게 됐다. 그날은 주말이었고, 당연히 나는 경기 시작 전에 TV 앞에 딱붙어 있었다. 그런데… 후앙도 마치 스페인의 빅매치가 있는 날인 것처럼 처음부터 경기를 열심히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 알다시피, 후반전에 한국은 우승후보 프랑스에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킨다. 웃긴 것은 그 순간 후앙이 나보다 더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딱히 스페인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적의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국가 대항전이 나오면 한일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일반적으로 한국인에게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그저 유럽 출신 위인 중 하나일 것이나… 스페인 사람들에게 나폴레옹을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들먹이면? 적절한 비유를 하나 대자면, "유럽에서 온 어떤 사람이 한국사람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들먹이며 먼 옛날 동북아의 걸출한 인물 중 하나였다 라고 말하는 상황".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은 그들의 자존심에 뼈아픈 상처를 남긴 것이다. 이후로 후앙에게는 나폴레옹 얘기를 긍정적으로 한적이 없다. 적당히 이 친구의 눈치를 보며, "소문에 의하면 그는 임포텐스 문제가 있었단다." 라는 정도의 얘기만 했다. (나폴레옹, 미안)
그 해 섬머인턴 이후로도 논문도 몇개 같이 쓰고 가깝에 지냈다. 전에 잠시 얘기했듯이, 주말 저녁이면 이 친구는 여기저기 파티를 찾아 다녔고, 나도 거기에 끼워 돌아다니곤 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옮겨 오면서 같이 집을 구해 졸업할 때까지 2년동안 룸메이트로 지냈다. 보통 각별하게 친한 친구와 같이 집을 사용하는 것은 그렇게 좋지 않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고 얘기한다. 특히나 우리는 곧 졸업해야 하는 공대 박사 고년차들이다 보니 둘다 굉장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한지붕 아래 지내야 했고 (낮에는 같은 연구실), 이것이 친구 관계를 파탄낼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행히 큰 문제없이 -- 갈등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 둘다 같은 날 졸업하고 모든 일이 잘 마무리 됐다. 사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문제보다는 서로 위안받고 도움 받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친구는 졸업 후 스페인으로 돌아가 공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고, 작년에는 첫 박사 학생을 졸업 시켰다고 한다.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일년이나 2년에 한번씩 캘리포니아로 오는데 그때마다 꼭 만나서 식사를 한번씩 한다. 학교에서 서로 알고 지낸 기간은 4년이지만, 그 시간이 인생에서 워낙 힘든 때였다보니 흔히들 말하는 전우애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스페인에 있는 또 하나의 형제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친구가 "친구"라는 것에 대해 내게 한 짧은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Hard to get. Easy to lose."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내가 누려야 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 말은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