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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으로 미국 생활을 하면서 처음 정착한 곳은 미국 펜실바니아 주의 피츠버그. ("Pittsburgh". 그렇다. 스펠링이 참 애매하다. 그곳 주민들도 제대로 못쓰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한국에서는 그곳의 야구팀이나 풋볼팀을 매개로 좀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사실 그 한국인, 한국혼혈 스포츠 스타들을 제외하면 한국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도시다. 100년쯤 전에는 세계 최고의 철강 도시였으나 (지금의 실리콘밸리 같은 이미지였을까), 이후 미국 철강 산업이 쇠락하면서 젊은이와 노동자는 다 떠나버린 미국 중동부의 그저 그런 촌동네 소도시일 뿐이다. 실제로 피츠버그 여기 저기를 거닐다 보면 정말 다양한 양식의 교회, 성당 건물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의 믿는 종파가 각기 달랐기 때문이라한다. 그나마 이후 좋아진 점이라면 공장들이 사라지면서 공기가 깨끗해졌다는 것? 실제로 근방의 은퇴한 미국인들이 노후에 정착하는 곳이라고 한다. UPMC 같은 명문 의대의 대형병원, 깨끗한 공기, 그리고 낮은 물가가 은퇴후 생활하기에 참 좋은 조건이다. 아무튼 그곳이 내가 처음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한 곳. 솔직히 말해 "처음" 이라는 의미 외에는 그다지 큰 의미도 없고, 나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중동부의 작은 도시이다 보니, 인구 구성은 대다수의 백인과 흑인, 그리고 아주 소수의 아시아 인종 정도? 동부, 서부 해안 지역과 다르게 히스패닉은 거의 만나 보지 못했다. 이런 전형적인 인구 구성이다 보니, 외국인은 정말 외국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수퍼마켓이나 식당 등에서 그곳 백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나와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내 뒷통수, 등뒤에 꽂히는 시선. 부당한 차별을 당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심적으로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별로 반갑지 않은 이상한 관심." 이러다 보니 웃기는 일들도 종종 생긴다. 한번은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바의 같은 줄에 앉은 미국인들이 뚫어져라 쳐다 보는 것이었다. 내가 주문을 하자 뭘 시켰는지 물어보고 그게 맛있느냐 물어보고 자기도 그걸 먹는댄다. 그리고 내가 하는 젓가락질도 유심히 쳐다본다. 간단히 얘기하면, 일식당에 들어온 아시아인을 그냥 아무 의심없이 일본인이라고 찍어 생각할 정도로 타 인종/문화에 생소하며, 가끔은 이상한, 그것도 아주 강한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하게 된다는 거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이로 인해 그 미국인들이 인종차별주의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모르는 것, 이상한 것에 대한 모든 인간의 공통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일 뿐이다. 물론 다양성에 대한 무지가 자랑일 수는 없고 이로 인해 생기는 극단적이고 억울한 차별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어쩌면 미국인과 한국인을 이 부분에서 비교하자면 한국인이 더 인종 주의자에 가까울 것 같다. 너무 오랜시간 단일문화, 단일민족 ("단일민족" 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으로 살아 왔으니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겠지. 아무튼 개인적으로 이부분은 그곳 생활을 힘들게 만든 것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예전에 한국에서 버스,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내가 신기한듯  빤히 바라봤던 모든 외국인들에 미안함을 느꼈다.


피츠버그 생활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부분은 의외로 추위였다. 한국과 비슷한 위도 상에 위치하지만, 내륙 지방이라 겨울이 춥다. 그에 더해 가까이 있는 오대호의 습기가 겨울에는 엄청난 양의 눈을 뿌려댄다. 10대, 20대 초반이었을 때와 달리 나이를 먹기 시작하니 추위가 슬슬 싫어지기 시작한데다, 한국에 대한 향수와 결합한 추위는 단순히 영하 10도, 20도 같이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더 이상 아니었다. 흔히 우리가 "춥고 배고프다" 에서 말하듯, 추위는 인간이 당면한 어려움을 표현하는 가장 흔한 메타포 중 하나다. 첫해 가을 본격적으로 미국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 자존감과 피폐해진 정신상태에, 별 준비없이 맞은 그 해 겨울은 그곳 삶에 대한 나의 의지를 산산조각 내 버렸다. 뭔가에 결핍 된 듯, 나는 항상 따뜻한 음식, 국물만 찾았고, 그 첫해 겨울이 "반세기만에 찾아 온 강추위" 같은 것처럼 내년 겨울이면 볼 수 없을 이상 현상이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물론, 그것은 그곳의 지극히 평범한 겨울이었고, 이런 겨울을 피츠버그에서 3번이나 맞아야 했다. 지도교수님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옮기지 않았다면 아마 3번이 아니라 최소한 5번이 됐겠지만 말이다. 사실, 피츠버그의 추위는 미국의 미네소타주나 캐나다에 비하면 아주 호들갑을 떨 정도로 추운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추위"는 단지 내 유학 초기의 정신적인 어려움에 대한 메타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모든 종류의 결핍을 수면 위로 적나라하게 솟아오르게 할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따뜻한 인간관계의 결핍, 자존감 결핍, 꿈과 비전의 결핍, 한국에서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누렸던 모든 것들의 결핍.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는데 이후 2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나는 물론 그 당시 알지 못했다. 지금은 그때가 그냥 전형적인 찌질한 초기 유학생 시절로 느껴질 뿐.


피츠버그를 떠난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 곳 생활을 물으면 나는 그냥 "추워." 한마디만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어떻게 보면 나는 아직도 그때의 어려움을 아직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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