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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로 옮겨 온 대학원 4년차 시절, 랩 동기, 친구들과 함께 버클리 소다홀에 오피스를 배정받았다. 피츠버그에서 버클리로 옮기면서 훨씬 나아진 점은 음식이 더 다양하고 맛있다는 점이었다. (그곳 인구 구성의 다양성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 듯.) 점심 시간이 되면 소다홀 근처의 작은 푸드 코트에서 배를 채우곤 했는데, 주로 Juan 과 같이 다니다 보니 이 녀석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점을 주로 가게 됐다. 사실, 전통 한국음식이라 보긴 힘든 BBQ 치킨, 치킨 비빔밥, 야채 비빔밥 등이 주 메뉴였는데,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에 엄청난 양, 싼 가격 덕에 많은 학생들이 찾는 편이었다. 당시 1년간 채식을 했던 나에게 그곳의 야채 비빔밥은 준수한 점심거리였다.
그 푸드코트 한국식당이 기억나는 것은 그곳의 야채 비빔밥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은 백발이 듬성듬성한 한인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버클리의 한국인 학생들도 그 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무뚝뚝한 얼굴 표정에 인종을 불문하고 손님에게 말한마디 건네는 법이 잘 없으니, 다들 쌀쌀맞은 한인 식당주 정도로 기억하는 정도였다. 사실 내 눈에는 그분이 그다지 생계를 위해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아닐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어느 금요일 오후, 그날은 점심때 일이 있어 때를 놓치고 오후 두 세시쯤 혼자 그곳을 찾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야채 비빔밥을 시켜먹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그 주인 할아버지와 대화가 시작됐다. 금요일 오후 3시, 손님은 없는 시간이고, 대략 식당 정리를 끝내고 테이블 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쉬시던 할아버지는 매일 같은 메뉴만 시켜먹는 단골에게 그냥 개인적인 푸념으로 들리는 한마디를 던졌다. (그 첫마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나에게 그다지 의미있는 얘기는 아녔던듯 한데, 뭔가 좀 더 생각해서 "의미있게" 받았던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대화가 이어지면서 많은 얘기가 오고 갔다. 주로 그 할아버지의 얘기였지만.
그분은 젊은 시절, 한국에서 괌으로 이민을 가서 건설쪽으로 좀 큰 사업을 하셨단다. 그 시절의 얘기를 무용담처럼 들려 주시는데 나름 꽤 재밌었던 것 같다. 지금은 캘리포니아로 와서 가게를 몇개 내서 자식들한테 물려주고 있는데, 유독 이 식당을 물려받을 아들만 별로 생각이 없어 가게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그분이 나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몇달 뒤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 정리하고 LA로 가실 계획이라는데, 당시에는 그냥 푸념으로 들렸지 사실은 아닐 것이라 생각들었다. 나의 이런 추측에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 가게 분위기가 웬지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주욱 계속 그대로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재래시장 뒷골목에 몇십년째 대를 이어 영업하고 있는 국밥집 같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말 몇달뒤 가게는 없어졌다…)
얼마 시간이 지난 뒤, 그곳 한국 유학생들과 얘기 중에 그 식당과 주인 할아버지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그 분의 개인적인 얘기를 해 줬더니 다들 놀라는 거다. 그 무뚝뚝하고 쌀쌀맞아 보이는 주인장 입에서 어떻게 그런 개인적인 얘기가 나왔을까 하고.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깊은 얘기를 털어 놓는다. 내가 그 분의 첫마디를 좀 더 생각해 보지 않고 "아... 예" 라고 넘겼다면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겠지. 어떤 사람에 대해 이해하려면, 질문보다는 진지하게 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맞나 보다. 가끔씩 비빔밥을 볼 때마다 --전혀 상관없는 주제지만-- 잊고 있던 이 단순한 진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